호원동 전좌마을에서 회룡골 계곡을 따라 서북쪽으로 2km쯤 오르다 보면 회룡사에 이른다.
회룡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의정부에서는 망월사 다음으로 오래된 절이다.
그 후 경순왕 4년 (930)에 동진국사가 재창한데 이어 고려 문종 24년 (1070)에는 혜거국사가 고려 우왕 10년(1384)에는 무학대사가 개축했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오다가 6.25동란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54년 도준 스님이 목조건물의 숭당을 복원하고 계속해서 대웅전, 약사전, 선실, 요사, 법당 등을 차례로 복의 숭당을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회룡사에는 의상조사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5층 석탑과 조선 전기의 것으로 추측되는 식수 저장용으로 쓰이는 석조가 있고 회룡사 경내의 화단에 신장상을 조각한 2기의 노주가 있다.
이 절의 원래 이름은 법성사였다가 나중에 회룡사로 고쳐 부르게 됐다.
이성계가 아직 왕에 오르기 전에 무학대사와 함께 이곳에서 3년간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3년간 치성을 마친 후 이성계는 동북병마사가 되어 요동에 출정하고 무학스님은 이곳에 있으면서 새 왕조 창업을 기원하였는데 마침내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에 머물러 있는 무학스님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태조가 절의 이름을 회룡이라 개칭했다고 전해온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는 말로서 ‘회룡’은 임금이 되어서 돌아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봉선사본말사약지’에 의하면 회룡의 내력이 좀 다르다. 태조가 함흥에서 서울로 환궁할 때 이 절 부근에 이르자 어가(왕 이 타던 수레)가 멈추어 움직이지 않으므로 무학대사가 회란용가를 기원했는데 그 기원이 성취 되었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법성사 대신 회룡사로 고쳤다고 한다.
어쨌든 회룡사는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인연이 상당히 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