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시의 역사
◐ 고구려 때 ‘물 고을’을 뜻하는 ‘매성현’
◐ 통일신라때는 ‘내소군’, 고려때엔 ‘견주’로 불려
◐ 조선 태종때엔 양주도호부
◐ 1963년 1월1일 의정부시로 승격
의정부시는 고조선 시대에는 진(辰), 삼한 시대에는 진한(辰韓)땅에 딸려 있었다고 하나 그 경계가 분명치 않아 확실히 할 수 없다. 다만 고구려 때에 매성현(賣省縣)에 딸려 있었는데, 일명 창화현이라고도 불리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매성현의 매(賣)는 물(水)의 옛말인 ‘매’를 음차한 것이고, 성(省)은 [시옷‘ㅅ’]의 촉음자이며,
현(縣)은 ‘고을’을 뜻하므로 결국 ‘물 고을’의 뜻이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내소군(來蘇)이라 부르다가, 고려 태조 왕건 때에는 견주(見州), 현종 9년 (1018)에는 양주(楊州), 충렬왕 34년(1308)에는 한양부(漢陽府)로 이름이 변천 돼 왔다.
조선 태종13년(1413)에 양주도호부(楊洲都護府)로 이름을 고치면서 그 밑에 견주(見州), 사주(沙州), 풍양(豊讓) 등 세현을 두었는데, 지금의 의정부시와 양주군은 견주, 동두천시는 사주, 남양주군은 풍양에 속해 있었다.
연산군 때에 이르러서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도성(都城)을 중심으로 사방 1백리 안을 임금의 놀이터로 삼을 것을 명령하면서 동북쪽으로는 양주, 포천, 광주 일대 백성들이 강제로 쫓겨나 농토마저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나 중종1년 양주는 다시 복구되어 불곡산 밑에 관아를 두니 지금의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이다.
갑오개혁 이듬 해인 1895년에 전국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府) 3백66군(郡)을 새로 설치할 때 한양부 양주군으로 되었다가, 다음해에는 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한일합방후 1912년 양주군에 32개의 관할 면(面)을 두었는데 그중 시북면(柴北面)과 둔야면(芚夜面)이 오늘날 의정부시의 모체가 된다. 의정부라는 이름은 둔야면 의정부리로 191년부터 문헌에 등장 하게 됐다.
1914년 4월1일, 전국 행정구역을 정비함에 따라 시북면과 둔야면을 합쳐 그 머릿글자를 따서 시둔면(柴屯面)이라 개칭하고 11개 방리(坊里)를 두었다.
의정부리, 호원리, 장암리, 신곡리, 용현리, 낙양리, 민락리, 자일리, 금오리, 강릉리, 녹양리가 곧 그 당시의 방리인데 지금도 동(洞) 명칭이 그렇게 불려지고 있다. 1922년 10월1일에는 군청 소재지를 주내면 유양리에서 시둔면 의정부리로 옮겨 오면서부터 의정부는 양주군의 중심부를 이루기 시작했다.
1938년 10월1일 시둔면이 양주면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4년 뒤인 1942년 10월1일에는 의정부읍으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1963년 1월1일 드디어 의정부시로 승격됐다.
시로 승격될 당시의 인구는 5만7천2백59명 이었으며, 관할면적은 72.88㎢, 11개 법정동리와 36개 자연부락을 갖고 있었다.
자료제공 : 의정부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