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유례-의정부동,호원동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과 동(洞) 이름은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마을 이름과 동명의 유래를 살펴 보자
첫 번째 의정부동
원래는 둔야면 의정부리와 파발막리였으나, 1914년 전국 행정구역을 폐치분합 할때 시둔면 의정부리가 됐다.
의정부 1동은 제일시장을 비롯한 큰 시장이 산재해 있고 유흥업소가 밀집돼 있는 상업 중심지역일 뿐아니라 금융기관과 각급단체가 자리하고 있어 시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의정부 교육청과 중앙 초등학교, 양주군청이 자리잡고 있던 의정부 4동도 지난 98년에 의정부 1동으로 통합됐다.
의정부2동에는 군사시설이 있어 도시발전이 침체를 면치 못하다가 신시가지 개발과 함께 본격적인 개발이 이뤄졌고, 의정부시청과 경기도 제2청사 등 각급 기관이 들어서면서 눈부신 발전이 기대되는 곳으로 부각되고 있다.
의정부 3동은 시민의 젖줄인 중랑천이 남류하고 있으며, 의정부 세무서, 병무청, 경기북부상공회의소 등 공공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한편 구 의정부 4동은 조선 선조때 교통, 통신기관의 하나인 ‘두헌천참’이라는 파발이 있었던 곳으로 파발막리라 불리웠다.
두 번째 호원동
호원동은 서울시와 접하는 의정부의 관문으로서 동쪽으로는 중랑천을 사이에 두고 장암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도봉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는 의정부시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는 동이다.
도봉산에 유명사찰과 명소가 많이 있기 때문에 행락철이면 등산객이 주을 잇는 관광지이기도하다. 또한 신흥대학이 자리잡고 있어 인재양성과 지역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범골 : 도봉산 기슭에 잇는 마을로서 옛날 이 동네에 범씨가 많이 살았다고 하여 범골이라 불렀는데, 한자로 잘못 표기하여 호동(虎洞)이 됐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 마을 뒷산에 동굴이 하나 있는데 범이 많았다 하여 동굴 이름을 범굴이라고 했고 동네 이름마저도 범굴에서 범골로 변음됐다고 한다.
회룡골 : 회룡사 입구의 마을로서 절 이름을 따서 회룡골이 됐다. 회룡사는 원래 법성사였으나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전 이곳에 계시던 무학스님을 찾아와 함게 머물렀는데 임금이 되 돌아 왔다고 하여 그두 이름을 법성사 대신 회룡사로 고쳤다고 한다.
전화마을 : 회룡골 입구 마을로서 조선조 초기에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겪은 이성계는 정치에 뜻을 버리고 함흥으로 간 후 돌아오지 않다가 결국 무학스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한양환궁의 길에 올랐다. 이때 태종은 부왕이 한양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친히 나와서 태조를 맞이했다. 그 때 두 임금이 마주 앉았던 곳 이라 하여 전좌마을이 됐다.
외미 : 전좌마을 오른편에 있는 마을로서 일제시대에 이곳에 일본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마을뒷산에 일본인 무덤이 많이 있었다 하며 처음에는 ‘왜묘(倭墓)’라 부르다가 외미가 됐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외미는 ‘구석진 마을’ ‘외진마을’에서 유래됐다는 주장도 있다.
다락원 : 서울시 도봉동과 경계를 이루고 이 마을에는 조선시대에 누원점(樓院店)이라는 시장이 있었다 하여 다락원이 되었다.
자료제공 : 의정부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