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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영덕에 숨은 감동 '속속'


 

 경북 영덕의 해안은 같은 동해를 끼고 있지만 북쪽의 울진이나 남쪽의 포항해안과는 사뭇 다르다. 다른 곳들은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의 산줄기가 다 내려와서 낮아진 평지 쪽에 너른 해안선이 펼쳐져 있지만, 영덕은 제법 높은 산들이 해안을 막고 서있다. 가파른 벼랑 아래에 해안이 발달했고, 옹색하게 포구마을이 자리잡은 형국이다.

 이런 지형탓에 영덕의 해안가에 바짝 붙어 솟은 고개에 오르면 바다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고갯마루에 서면 시선이 높으니 눈에 들어오는 바다의 폭도 두꺼워진다. 산에 올라 시선을 높이면 수평선이 높이 올라와 바다가 마치 벽에 바른 벽지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풍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산행코스가 바로 ‘망일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한옥들이 즐비한 괴시리 전통마을 안쪽의 목은 이색 생가에서 출발하는 이 등산코스에는 ‘목은 이색 등산로’란 이름이 붙어있다. 등산로라고 하지만 예부터 축산면과 영해면 사진리, 대진리 주민들이 영해 5일장을 보기 위해 생선과 건어물을 지게에 지고, 머리에 이고 넘어다니던 산속 오솔길이었다. 오솔길은 한때 해돋이 정취가 일품이었다는 망일봉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능선을 타고 다시 봉화산까지 간다.



 망일봉은 조선시대 때부터 해돋이의 명소였던 모양이다. 지금이야 인근 주민들도 잘 모르는 이름 없는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조선시대 영덕을 찾은 선비들은 망일봉에 앞다퉈 올랐다. 조선 중기 영해 부사였던 고용후와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은 이곳에 올라 해돋이를 지켜본 감동을 시로 남겼다.

 이른 새벽 그 망일봉을 따라 오르는 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속으로 난 조붓한 오솔길은 온통 짙푸른 소나무들로 울창하다. 장쾌한 바다 풍경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숲길에서는 소나무 가지에 시야가 가려 탁 트인 바다 풍경은 만날 수 없다. 그 대신 산 능선과 능선을 잇는 등산로에 놓인 아치교의 난간에서 빼어난 일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아치교는 영덕읍에서 사진리로 포장도로가 잘라놓은 능선을 잇기 위해 지난해 9월에 세워진 것. 다리는 이동의 효율성을 위해 놓은 것이 아니라, 느릿느릿 걷는 이들에게 풍경을 선사하기 위한 것이다.

 아치교 난간에 서면 저 아래 구불구불 언덕을 내려가 자그마한 포구마을에 가닿는 도로와 드넓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는 새벽의 푸른빛으로 가득한데 구름 뒤로 해가 솟으면서 붉은 기운이 번진다. 밤바다에서 조업을 마친 배들이 포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목은 생가에서 아치교로 들기 직전 왼쪽 샛길로 접어들면 바다에 바짝 다가앉은 봉우리 위로 오르게 된다. 이쪽에서는 바다와 함께 바다를 끼고 이어진 대진~축산간 해안도로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영덕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지만, 영덕에는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해면에는 눈이 시원해지는 너른 들녘도 있고, 지품면에는 오십천 물길을 따라 끝간 데 없이 펼쳐진 과수원들이 있고, 창수면 일대에는 인적이 드문 오지마을들이 있다.

 영덕을 찾은 이들은 대개 바다만 보고 돌아오지만, 영덕은 바다 말고도 여러가지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붙잡는 것은 단연 고색창연한 옛 집들이다.

 영덕은 대갓집들이 많고 문중의 종가들이 즐비해 예부터 ‘작은 안동’이라고 불렸다. 이에 걸맞게 내륙 안쪽 마을 곳곳에는 한옥들이 들어서있다. 괴시리 전통마을이 그 중 규모가 큰 곳이다. 괴시리는 영양 남씨 괴시파의 400년 세거지다. 너른 영해의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에는 대남댁, 물소화고택, 해촌고택 등 전통 한옥들이 흙담을 끼고 옹기종기 맞붙어 있다. 집 하나하나의 정취는 나무랄 데 없고 잘 정비돼 깔끔하지만, 주민들이 떠나면서 빈 집들이 즐비해 ‘사람 사는 향기’를 잃은 것이 아쉽다.

 괴시리에 버금가는 곳이 인량리 일대의 마을이다. 한때 8개 성씨의 종택이 있었다는 인량리는 재령 이씨, 안동 권씨, 평산 신씨 가문들이 저마다 세력을 과시하고 살던 곳이다. 갈암종택과 용암종택, 충효당을 비롯해 한옥들이 즐비하다. 또 인량리 남쪽의 원구리에는 고색창연한 한옥들이 마치 유적처럼 서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이 경수당 종택. 무안 박씨 영해파의 종택인 이곳에는 퇴계 이황이 쓴 편액을 내걸고 있다. 뒷마당에서는 울릉도에서 가져다 심었다는 700년 된 향나무의 귀기 어린 자태를 만날 수 있다.

또 오촌리 일대에도 면운재 고택 등 기품 있는 한옥들이 즐비하다. 이런 마을이 특히 각별한 것은 삶의 냄새가 난다는 것. 장작불을 들인 종택의 안채에서는 마을 할머니들이 이불을 나눠 덮고 10원짜리 내기 화투에 열중하고 있었다.

 창수면 운서산 기슭의 장육사로 가는 길. 장육사는 고려때 고승 나옹선사가 지었다고 전해오는 절집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로 시작되는 선시로 유명한 나옹선사는 이곳 영덕에서 난 뒤 스무살이 돼서 출가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자랐다.

 창수면 신기리에는 나옹선사의 유적지가 남아 있다. 700여년 전 나옹선사가 출가하면서 꽂아놓은 지팡이가 낙락장송이 된 반송으로 자랐다는 곳이다. 1965년 반송은 고사했고, 영덕군에서는 지난해 10월 그 자리에 다시 소나무를 심어 놓았다.



 장육사는 대웅전의 후불탱화와 벽화, 법당 천장의 주악비천상 외에는 그리 특별하달 것 없는 자그마한 절집이다. 굳이 장육사까지 가닿지 않더라도 절집 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화수루와 까치구멍집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곳이다.


 화수루는 단종의 외종숙인 일가가 세조에게 화를 당한 뒤 유배돼 여생을 보낸 곳이다. 이후 단종이 복위되자 대봉서원이 건립됐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화수루만 남게 됐다. 2층에 누각을 두르고 뒤편에 단층 건물을 세운 이 집은 지을 당시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지니고 있다.

 화수루 곁에는 초가를 얹은 까치구멍집이 있다. 까치구멍집이란 대청과 부엌을 건물안으로 들이고 지붕에 구멍을 내서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한 집이다. 이런 집들은 그저 ‘관람’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누각에 올라서 주변 풍광을 내다보거나 집안에 들어 실제 생활을 한다고 가정하면서 조목조목 뜯어봐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집이 가진 진면목이 보인다.

 영덕에는 사실 여행 명소들이 즐비하다. 강구와 축산을 잇는 이른바 ‘강축 드라이브 코스’나 창포 해맞이 공원, 강구항, 풍력발전단지 …. 이즈음에 살이 꽉 차는 영덕 대게와 쫄깃한 자연산 전복의 명성도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런 풍경은 후포에서 강구까지 7번 국도와 20번 지방도로를 번갈아 타고 가면 다 만나는 곳들이다.

 그러나 영덕의 진면목은 이렇게 드러난 곳에만 있지 않다. 소박한 옛 오솔길에도 빼어난 절경이 있고, 내륙 안쪽에 오래된 삶의 정취를 간직한 숨은 풍경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인문의 풍경과 마주할 때 여행의 감동은 더 깊어지는 법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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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근 시장, 박상우 장관과 '용현 공공주택지구' 현장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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