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신문/방송 협의회장 대표기자 고병호 나라는 올해 들어 두 번씩이나 국가 지도자를 잃은 슬픔에 젖었다. 민주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고 민주화 투쟁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인동초’ 김대중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85세의 일기로 서거 하셨다. 1924년 전라남도 목포에서도 30km나 떨어진 산안군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정치 역정을 겪으면서 살아있는 인동초로 불리며 전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가 되어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빛과 소금이 되셨던 큰 인물이 가는 세월을 이기지 못해 급기야 2009년 8월18일 오후 1시43분 역사의 뒤안길로 영면 하시게 됨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착잡하기 그지없다. 1954년 30세의 나이로 6.25동란 때 피난시절을 겪었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고 올바른 정치의 기치를 마련하겠다고 뛰어든 정치계에서 김 전대통령은 내리 3번의 낙선과 함께 부인을 사별하는 고난과 역경을 맞이 하였고 1961년 37세때에 비로소 강원도 보궐 선거에서 민의원으로 당선이 되었지만 이 마저도 1961년 5.16혁명으로 민의원 선서도 못해보고 4일 만에 국회가 해산되는 불운을 맞기
(창간 3주년을 맞이하여) 고병호 의정부신문·방송협의회장 바람을 가르고 말을 달리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달려온 세월이 어느덧 3년이 흘렀습니다. 멋모르고 애향심하나로 달려들어 깨지고 터지고 고난을 겪으면서 가꿔온 ‘지역의 대표언론’. 참 힘들었지만 보람도 많았습니다. 조용히 3주년을 맞은 의정부신문·방송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역의 참된 언론을 만들자는 신념으로 지켜 봐주시고 도와주시는 협의회 고문님들, 이사님들 및 많은 회원님들께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묵묵히 걷는 저희의 길을 지켜봐주시는 시민여러분들께 또한 감사드립니다. 좋은 소식이던 나쁜 소식이던 저희 소속기자들이 현장을 누비면서 취재 할 때 다소 업무적 상황과 의견의 차이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을 지니는 경우도 있지만 취재에 협조해 주신 기관단체, 공직에 계신 분들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모두가 입장의 차이는 있겠지만 ‘잘사는 의정부, 선진도시로 도약하는 의정부시’를 만들자고 노력하는 공동체적 인적 구성원들로써 각자의 맡은바 삶과 의무에 충실하며 우리의 후손들과 후예들에게 ‘겸손한 당당함’으로 우리
의정부신문방송에서는 신속한 현장 출동으로 현장감이 담겨있는 동영상을 MBC에 제공, 전국방송에 신속보도를 제공함으로써 공영성과 신속성을 추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아래의 아이콘을 클릭하시면 의정부신문 방송이 제공했던 뉴스를 MBC 홈페이지를 통해 시청하실수 있습니다.7월 25일 의정부경전철 전복사고 관련 26일 MBC 오전 뉴스투데이 방송화면8월 10일 의정부신곡동 백병원앞 유조차 전복사고 관련 11일 오전 뉴스투데이 방송화면앞으로도 많은 활동과 신속성을 기하는 의정부신문 방송이 될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정부라는 지명은 언제부터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 조선 3대 태종이 왕자 시절에 이복 동생인 방번(芳番)과 방석(芳碩)을 살해하고 소란을 일으키자 태조 이성계는 불충불의한 자와 함께 살 수 없다고 하여 함흥으로 옮겼다. 이후 태종은 여러 차례 사자(使者)를 보내어 용서를 빌었으나 태조는 사자(使者)를 감금, 살해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함흥의 사’ 또는 함흥차라는 말이 이때부터 생겨났다고 전한다. 이후 태조가 화가 누그러지는 듯해서 태종 2년(1402) 12월에 지금의 의정부까지 돌아오게 되었다. 이때 태종은 부왕을 맞을 연회를 베풀기 위해 천막을 치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한편 중신 하륜(河崙)은 부왕 태조가 반드시 태종을 해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천막에 큰 기둥을 많이 세우게 했다. 태조는 활의 명수(名手)이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였다. 예상대로 태종은 순간적으로 기둥 뒤에 몸을 피해서 다행히 부왕의 화살을 맞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곧 연회가 시작되자 태종은 ‘헌수(獻壽)’의 뜻으로 친히 부왕 태조에게 잔을 올려야만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하륜의 지략으로 하
경민대학 교수 김남일 이명박 대통령은 금년 3월 17일 제1차 국가브랜드 보고회에서 ‘국가 상승’을 강조한 이후 지난 7월 22일 제2차 국가브랜드위원회 보고대회를 주재 ‘코리아 브랜드’를 끌어올리기 위하여 아이디어를 수렴했다고 한다. 지난 1차 회의때 ‘경제적 위치에 걸맞는 국가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지 못해 문제’ 라며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이 3만∼4만 달러가 되더라도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국민, 국가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국가 브랜드 가치란 한 국가 내의 모든 국민들이 생산해 내는 가치의 총 합산을 의미 한다. 국가 브랜드 지수는 국민이나 기업 등 민간의 활동으로 향상시킬 수도 있고, 국가의 홍보와 관리 등으로 인하여도 향상될 수 있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는 한 국가의 경제적 성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현대에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브랜드/이미지 마케팅은 여러 기업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 50개국을 대상으로 안 홀트 도시브랜드지수조사-GMI가 발표한 국가브랜드 자료를 살펴보면 국가의 국민, 통치, 수출, 관광, 문화와 유산, 투자와 이민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