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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 이국진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살아생전 후배 작가들의 이 질문에 고 박경리선생은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라고 대답했다. 전혀 예상치못한 이 소박하고 원초적인 대답에 후배들이 돌아가는 차안에서 울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박경리선생은 ‘그들이 왜 울었을까’ 짐작한 끝에 ‘누구나 본질을 향한 회귀본능, 누구나 순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박경리선생은 말년에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지어 후배작가들이 와서 글을 쓸 수 있도록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는 새벽이면 텃밭에 나가 채소를 가꾸고 그 채소들을 후배들이 먹을 식탁에 차려주었다. 사람을 알뜰히 챙기는 인정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앞에 경건함과 고귀함으로 대하여 어쩌다 땅에 떨어져있는 쌀알 한 알도 남김없이 줍는 박선생의 모습에서 고 박완서선생을 비롯한 많은 후배작가들이 존경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회촌 골짜기를 떠나 도시로 가면 그들도(후배작가들) 모두 한몫을 하는 사회적 존재인데 우습게도 나는 유치원 보모 같은 생각을 하고 모이 물어다 먹이는 어미 새 같은 착각을 한다.’(박경리 유고시집)

서른살이 안되어 남편과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억겁과도 같았을 세월을 그렇게 배추심고 고추심고 파심어 땅에 정 붙이고, 적막강산 이 세상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서운 밤엔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자신을 지탱해주었노라고 고백한다.

누군가에게 육체적인 노동은 지옥과 같은 고통스러운 세월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구원이며 기도고 어머니다.

땅을 갈고 싹을 틔우고 정성을 다해 생명을 기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무의식속에 단단하게 웅크리고 숨어있는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희구와 에너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과 정신은 정반대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 같지만 기실 그 둘이 합쳐야만 정신과 육체가 합일이 되어 균형있는 삶을 이룰 수 있다.

한 때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던 헬렌 니어링은 전도유망했던 교수였으며 사회개혁자인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한평생 자연주의자로 살아갔다. 두 사람은 당시 누려왔던 부와 명성과 기득권을 버리고 버몬트 숲에 터전을 마련해 스스로 집을 짓고 땅을 일구며 모든 필요한 물품들을 만들어 사용하고 이웃들과 나누고 글을 쓰고 강의하면서 세상을 마무리할 때까지 정신과 육체가 조화를 이룬 균형된 삶을 살다 생을 마감했다.

고 김점선 화가는 천방지축으로 살았던 젊은 시절 한 미술계 선배가 “예술은 순수하고 탐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기를 낳고 기저귀를 빨기 위해 얼음물에 손을 넣고, 시장에 가서 백 원어치를 사면서 어떻게 더 많이 받을 수 없을까를 생각하며 부들부들 떨어본 뒤에야 예술이라는 게 될지 말지다”라며 결혼을 적극 권유하는 말에 감명을 받고 결혼을 결심했다.

선배의 말이 예언이 되었듯 그는 결혼 후 가난했으며 끼니를 잇기 위해 산에 올라 온갖 풀을 뜯어다 연명했고 직업이 없는 남편과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자기 혼자만 초대받은 부잣집에서 자기 몫으로 나온 견과류를 안 먹고 가져와 아들과 남편이 그걸 먹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슬프고 행복해서 눈물을 흘리며 속으로 결심한다.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좋다. 밤 새고라도 그림 그려서 그걸 팔아 그들(남편과 아들)에게 주리라. 아낌없이 주리라. 다시는 부잣집 유리창 문 속에서 홀로 울지 않으리라.”(김점선저서 ‘점선뎐’)

진정한 예술이란 삶과 동떨어져서 신비주의적이고 관념적이며 저 홀로 고아하게 피는 아름다움이 아니다.

예술가 자신이 지금 처한 그 곳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생생하게 실존하는 가운데 현재를 눈과 귀와 피부로 느끼며 부딪치고 내면화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의식 속에서 다시 재해석되어 태어난 또 다른 작가 자신이 바로 예술품이다.

예술가의 치열한 현재성이 있어야만 그걸 바라보는 대중에게 작가의 혼이 그대로 전달되고 교감되어 마침내 공감에 이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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